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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에 여순 앞 바다에서 러시아 함대를 향해 함포사격을 가함으로써 러일전쟁을 발동한 일본군은 같은 해 5월에 점령지 금주와 대련에 軍政署를 설치하고 중국의 법률과 법령관례, 그리고 일본의 법령을 참조하여 관할지역의 민사·형사소송을 판결하였다. 이듬해 6월 일본 요동수비군은 대련에 民政署를 설립하고 여순과 금주에 각각 支署를 설치함으로써 군정을 민정으로 바꾸었다. 민정서 소속 사법위원회는 일본 육해군형법과 국가형법 등을 참조하여 관내 주민에 대한 사형·징역·재산몰수·벌금·태형·구류 등 형벌을 제정하고 '一審制'로 민사·형사안건을 심판하였다.

1905년 8월에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포츠모스조약」을 통하여 여순과 대련지역을 포함한 요동반도의 권익을 러시아로부터 양도받은 일본은 遼陽에 關東總督府를 설립하고, 그 산하에 審理所를 설치하였는데, 소장·심판관·검찰관·통역관·서기관으로 구성된 심리소는 初審部와 覆審部를 구성하고 관내 민사·형사안건을 심판하였다. 1심은 심판관이 총독부 소속 민정서에 가서 심리하고 2심은 3명의 판관이 일심에 불복 상소한 사건을 판결하였다.

1906년 7월 일본정부는 관동총독부를 폐지하고 여순에 군정합일의 關東都督府를 설립하고 그 산하에 법원·감옥·통신관리국·海霧務局·관측소(기상관측소)·병원·학교 등 식민기관을 설치하였다. 관동도독부는 같은 해 9월에 심리소를 폐지하고 여순에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설립하고 대련과 金州에는 각각 지방법원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지방법원은 1명의 판관이 단독으로 민사·형사안건을 판결하고 고등법원은 3명의 판관이 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 상소한 사건을 공동 판결하였다. 고등법원은 또 長崎控訴法院과 長崎地方法院에서 관할하던 駐滿日本領事館의 판결에 불복 상소한 안건과 만주 각지에 있는 일본영사관에서 일심을 한 안건을 판결하였다.

초대 지방법원에는 원장 西平을 비롯한 판관 3명과 검찰관 1명, 그리고 서기 7명과 통역생 1명 배속되었다. 고등법원에는 원장 平石氏人을 비롯한 판관 6명과 검찰관 1명, 그리고 통역관 1명과 서기 7명이 배속되었다.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은 러시아군 참모가 사용하던 1층 건물 2채를 사용하다가 그 사이에 2층 건물을 증축하여 합동사무를 보았기 때문에 서로 겸직하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일본 육군중위인 고등법원 판관 大和田三樹太郞과 지방법원 판관 島田定持는 각각 지방법원 판관과 고등법원의 판관을 겸직하고 있었다.

1919년 10월 관동도독부는 대련에 지방법원 출장소를 支廳으로 승급시켰다가 1923년 8월에는 아예 지방법원을 여순으로부터 대련으로 이전하고 여순에는 고등법원 건물에 지방법원 출장소를 부설하였다. 그리고 법원원장의 관할을 받던 검찰사무를 관동청 청장에게 귀속시키고 법원에 檢察局을 부설하였다. 이듬해 즉 1924년 12월에는 고등법원을 覆審部와 上告部로 나누고, 종전의 2심제를 3심제로 승급시켰다

일본 식민통치기관인 여순일본법원은 항일투사를 비롯한 요동지구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러시아·이집트·터키·독일 등 국가의 국민을 판결하였다. 1936년의 통계에 의하면 지방법원에서는 민사안건 1,662건을 접수하고 1,061건을 판결하였고 형사안건은 1,995건을 접수하고 1,865건을 판결하였다. 같은 해, 고등법원에서는 민사안건 371건을 접수하고 161건을 판결하였고 형사안건은 130건을 접수하고 85명을 판결하였다. 그 중에는 한국의 항일지사 안중근의사와 신채호선생 등도 포함되어 있고 또 중국의 저명한 반일투사 付景陽·鄧鶴皐·姬守先·金伯陽 등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이 건물을 복원하여 안중근의사를 비롯한 항일투사들을 기리는 전시관으로 꾸며져 일반 관람객은 물론 한-중-일의 기업 및 단체 등의 연수와 학생들의 수학여행 탐방코스로도 활용되고 있다.


사진1 안의사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셨던 중국 여순관동도독부법원의 당시 모습
사진2 일본 패망 후 여순인민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여순관동도독부법원의 모습
사진3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이 여순관동도독부법원 건물을 매입하여 복원공사를 통해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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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역사여행학교팀 관동법원 방문
  • 8월 20일, [동아시아 역사 여행학교 @중국 전쟁의 도시에서 배우는 역사 그리고 평화] 동아시아 역사여행학교팀(민족문제 연구소 박한용 단장님) 30명이 관동법원을 방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