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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順日俄監獄舊址展示館은 현재 중국 요녕성 大連市 旅順口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감옥은 청일전쟁 후에 요동지방을 점령한 일본을 러시아가 '三國干涉'으로 일본의 세력을 축출하고 청조정부를 핍박하여 요동지방을 조차한 러시아가 1902년에 건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러일 전쟁으로 중단되고 러시아군의 야전병원과 기병병영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은 요동지방을 점령한 후 監獄署를 설립하고 여순에 본 감옥, 대련에 분 감옥, 금주에 출장소(임시구류소)를 각각 설치 하였다. 동시에 러시아가 완성하지 못한 감옥건물공사를 확대 시공하여 1907년에 완공하고 '關東都督府監獄署'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일본 식민통기관의 변화에 따라 감옥의 명칭도 따라서 변하였는데, 선후 關東都督府監獄署(1907년)·關東廳監獄(1920년 8월)·關東廳刑務所(1926년 10월)·關東刑務所(1934년 12월)·旅順刑務所(1939년 1월) 등으로 지칭되었다.

감옥은 부지 2.75만 평방미터, 감방 253개와 지하감방 4개, 그리고 15개 부설공장을 가진 대규모로 동시에 2000여명을 수감할 수 있는데, 그 모양이 서울 서대문형무소와 매우 흡사하다. 일찍 이 감옥에는 중공당원을 비롯한 중국의 애국지사와 한국·일본·러시아·이집트·터키·독일 등 국가의 反파시즘 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그 중에는 한국의 안중근 의사와 신채호 선생도 포함되어 있다. 해방 후에 장기간 방기되어 있다가 1971년 7월에 진열관으로 개관되었다. 1988년 중국정부는 감옥건물을 '전국중점보호단위'로 지정하였고, 1994년에 대련시정부는 또 '애국주의교육기지'로 지정하여, 일약 대련지방의 관광명소로 되어, 한해에 약 60여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100 여 년의 세파 속에서 비교적 완전한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旅順日俄監獄舊址는 제국주의열강이 중국을 침략하고, 약속민족의 인권을 유린한 유력한 역사적 증거이다. 오늘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며 인류의 평화를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고 있다


1. 몸 수색실(檢身室)
감옥의 동쪽에는 3칸으로 된 몸 수색실이 있다.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은 매일 아침에 감옥 부속 공장으로 복역하러 갈 때면 이 곳에서 죄수복을 벗고 간수의 검사를 받았다. 저녁에 감방으로 돌아 올 때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것은 '죄수'들이 흉기를 소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엄동설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몸 수색실에는 '죄수'들이 착용하였던 죄수복이 진열되어 있는
데, 붉은 색은 수감된지 얼마 안 되는 '죄수'들의 복장이고 푸른색은 '표현이 좋은' 혹은 장기수들이 착용하였던 복장이다. 수감된 '죄수'들을 이간·분화하려는 일본인 간수들의 간교한 술책을 엿볼 수 있는 일면이라고 하겠다.

2. 동쪽 감방
동쪽 감방은 3층으로 되어있는데 총 87칸으로 주요하게 '정치범인'을 수감하였던 곳이다. 1·2층은 보통감방으로 규정상에는 한 칸에 7∼8명을 수감하였지만, 흔히 십여 명씩 수감하였기 때문에 '죄수'들은 누워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3층은 독방으로 사형을 판결 받았거나 판결을 대기하는 '죄수'들을 수감하였던 곳이다.
매개 감방의 벽에는 중·한·일어로 된 감옥 규정이 붙여져 있다. 규정에는 '죄수'들은 감방 내에서 서로 마주하거나 말을 하는 것을 금지하며 무릎을 꿇고 있거나 혹은 방 가운데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만약 이를 위반한 '죄수'가 있다면 경한 자에게는 밥을 적게 주는데 그쳤지만, 중한 자는 고문실에 끌고 가, 혹은 '大'자 모양의 나무틀에 묶어 놓고 혹은 높은 곳에 달아놓고 호된 매질을 안기었는데, 그래도 '죄'를 승인하지 않으면 암방에 가두었다.
감방구석에는 나무로 만든 변기와 물통이 있고, 가름대우에는 식기가 놓여져 있다. 감방 문 옆에는 나무 패쪽이 있는데, 간수들은 패쪽에 있는 번호에 따라 '죄수'를 점검하였다.

3. 암방
암방은 일본 파시즘이 저들의 관리에 복종하지 않는 항일지사와 애국동포들을 잔혹하게 학대하던 감옥 안의 감옥이었다. 암방은 모두 4칸이 있는데, 매 칸은 길이 1.7미터, 너비 1.45미터, 높이 2.38미터밖에 안 된다. 사면이 벽으로 완전히 막혀, 하루종일 아무런 광선도 없고 습기가 또한 가득하였다. 벽에는 나팔모양의 구멍이 있었는데, 간수는 이 구멍을 통하여 '죄수'의 일거일동을 감시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복'하면 특수 제작한 무거운 수갑을 채우고 고무로 만든 옷을 입히는데, 암방에 갇히면 적어서 3∼5일, 많게는 1주일 동안 갇히었다. 수일동안 암흑 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강렬한 햇빛을 보고 실명한 '죄수'들도 있다고 한다.

4. 고문실
고문실은 일본이 수감된 '죄수'들의 인권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혹독한 고문을 가하였던 곳이다.
1908년, 일본 관동도독부는 「벌금 및 태형 처벌 령」을 반포하고 감옥 내에서 임의로 형벌을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는데, 감옥 내에서는 간수가 '감옥규정을 위반한 죄수'와 구류하였으나 판결하지 않은 사람은 대나무로 만든 곤장과 쇠몽둥이로 구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실지로 일부 항일투사들은 이른바 이러한 '심문' 중에 생죽음을 당하였다.

5. 서쪽 감방
서쪽에는 감방이 모두 82칸이 있는데 2층으로 되어 있다. 2층에서도 아래층을 감시할 수 있도록 복도 바닥에 철 막대기를 깔아놓았다.

6. 삼각구역(三角地)
서쪽 감방 건물과 가운데 감방 건물 사이에 있는 삼각구역은 '죄수'들이 소풍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죄수'들은 소풍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서로 소식을 전하고 고무 격려하였는데, 1941년 王其煥·瞿淸平·寧學賢 등 3명은 바로 이곳에서 中共 옥중지부를 설립하였다.

7. 북대문(北大門)
감옥 후문으로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북 대문이라고도 한다. 1944년 가을, 제8공장에서 일하는 '죄수'들은 가위 반쪽으로 간수를 찔러 죽이고 집단 탈옥하였다.

8. 사형장(死刑場)
사형장은 1934년에 신설한 교수형장인데, 여기에서만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수천 명의 항일지사와 애국동포가 비밀리에 처형되었다. 그 중에서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만도 700여 명이 처형된 것으로 집결된다. 1942년 12월의 어느 이틀사이에 이곳에서 紀守先 등 9명의 항일지사들이 처형되었다. 지어 일본은 항복한 이튿날에도 이곳에서 중공당원 劉逢川·何漢淸 등 6명을 교살했다.



1895년의 청일전쟁부터 대련과 여순지방은 줄곧 제국주의 치열한 쟁탈 속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감수하였다. 특히 1904년 여순에서 발발한 러일전쟁은 근대역사에서 보기 드문 陸海大戰으로, 오늘까지도 전쟁의 유적과 유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안중근의사님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동양평화의 교란자요 일본 제국주의 침략 원흉인 伊藤博文을 격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에 체포되었다.
일본은 당시 하얼빈을 관할하고 있던 러시아에 압력을 행사해 러시아헌병으로부터 바로 안의사님을 인도하여 주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기본취조를 마치고 11월 3일 여순감옥에 수감하였다.
안의사님은 수감중에 여순소재 관동도독부 법원에서 6회의 공판을 통해 사형을 언도 받으셨다.
안의사님은 항고를 포기하고 옥중에서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자서전은 탈고하였으나 동양평화론은 서론부분인 전감만을 쓰시고 일본이 약속을 어기고 조기 사 형집행을 강행하여 본론과 결론 부분에 대한 대강은 고등법원장과의 대화를 통한 속기록으로 남겼다.
또 수감중에 200여편의 주옥같은 유묵을 남겨서 현재 발견된 진본의 상당수가 국가보물로 지정되었다.
안의사님의 수감 감방과 순국지, 유해매장지 등은 일본의 철저한 은폐로 아직도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본 재단은 2000년 7월 6일 안중근의사님 순국당시의 교형장 위치를 알려주는 자료를 여순수도국 당안관에서 발굴하여 관련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한-중 양국에서 동시에 언론에 발표하고 이 교형장에 안의사님 동상과 자료 등을 설치, 안의사 독립전시관을 마련했다.
재단이사회는 2001년 4월 5일 여순감옥을 방문하여 독립전시관을 마련토록 협조해준 관련 인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계속적인 유지 관리를 위해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전시관은 동영상과 사진 자료를 통하여 방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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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26일 대련 731 죄증 특별기획전시를 여순관동법원구지에 마련하고 정식 개관하였습니다. 대련 731 전시 자료 등은 대련성시전시관장 강충강선생이 보관하던 것이었습니다. 이 날 대련일보와 여순TV 등 매체가 취재하여 보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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