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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기념관여순관동법원구지전시관 설치 운영 안중근의사께서는 1909년 10월 26일 동양평화의 교란자요 한국침략의 원흉인 일본 추밀원의장 이토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 역두에서 격살하고 러시아 헌병에 체포되어 일본 영사관에 넘겨졌고 11월 3일 여순감옥으로 이송되어 수감되었다.

안의사께서는 1909년 11월 3일부터 1910년 3월 26일 순국하시기까지 여순감옥에 수감되셨고 여순소재 일본관동도독부 고등법원 1호 법정에서 1910년 2월 7일 제 1차 공판을 시작으로 계속 재판을 받아 2월 14일 제 6차 공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본 재단은 이 법원구지를 확보하여 안의사님께서 재판받으시던 당시의 법원 모습을 복원, 유적으로 관리함은 물론 당시 재판광경을 재현하는 행사 등을 실시하는 체험장으로 활용하면서 법원관련 내용을 전시하여 관람토록 함으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죄상을 드러내고 항일지사들의 애국정신과 평화사상 등을 선양하고 교육하는 전시관으로 운영중이다.

재단은 목적사업의 성취를 위해 중국에 현지법인 대련평화여유관광유한공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재단은 중국 여순 현지에 안의사 등 순국선열관련 유물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안중근의사와 단재 신채호 선생 등 많은 애국 항일 지사들이 부당한 재판을 받았던 여순관동법원구지와 수감생활을 하고 순국한 현장인 여순감옥구지 등을 목적사업 대상으로 선정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였다.

여순감옥구지는 이미 중국 정부차원에서 전시관을 만들어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관리운영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시관 측의 협조를 받아서 감옥에서 순국하신 안중근의사와 단재신채호선생 우당 이회영선생 등의 특별 전시실을 설치토록 하였다.
한편 여순관동법원구지는 여순시립병원 행정건물로 사용되었으며 병원 측은 낡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신축행정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재단은 법원구지를 보존하기 위해 병원 측과 수차 협상을 벌였으나 병원 측은 방침을 고수하면서 과도한 건물 비용과 의료장비 기부 등을 요구하였다.
재단은 병원 측과 협상을 계속하면서 한편으로 중국정부의 문화부문에 법원의 원형보존의 필요성과 가치 등을 강력히 주장하여 지방 정부의 보존 문물로 지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병원 측은 지방 문화재로 등록된 건물을 훼손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태도를 바꾸어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고 많은 양보를 함으로써 재단이 법원구지를 인수할 수 있게 되었다.

재단은 목적사업 추진을 위해 기금을 정부 주무부처와 유관부처의 승인을 받아 중국 현지법인에 이전하고 법원의 기념관화 사업에 필요한 부지 및 건물 구입자금과 원형 복원 및 전시비용 등으로 집행하여 현재의 모습을 완료하였다.

재단은 안중근의사께서 피고인 신분으로 제국주의 재판관을 향해 의연하고 논리정연하게 이등박문의 죄상을 지적하고 일본의 잘못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쾌거를 이룬 재판현장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면서 보존하고 재현 행사 등을 통하여 민족정기를 고양시키고 애국 평화정신을 선양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여순에 대해 해군기지로서 군 시설이 많다는 이유 등으로 전면개방을 미뤄왔으나 2009년 하반기부터 여순을 전면 개방한다고 밝힘으로서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비롯하여 기업연수 및 각종 단체 행사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이에 부응하도록 전시관의 관리와 운영에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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